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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상공을 야간 비행하는 파일럿들은 남북한의 경계선을 공중에서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한 땅은 주택과 도로와 자동차의 불빛이 찬란하게 반짝이지만, 휴전선 북쪽은 정반대로 암혹의 땅이기 때문이다. 겨울에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여러 날 계속되거나, 여름에 강력한 태풍이 강습하고 나면, 송전시설이 과괴되어 며칠 찍 전기 공급이 증단되는 일 이 발생한다. 정전은 모든 사람을 아우성치도록 만든다. 학교 숙제조차 하기 어렵도록 집안은 칼칼하고, 엘리베이터가 정지하여 몇 시간이고 갇혀 있어야 하는 사정이 되기도 한다. 냉난방 장치가 정지하며, 주방과 화장실에는 수롯물 공급이 끊어지기도 한다. 공장에서는 생산이 증단되고, 냉장 시설에 보관된 식품이 썩어가게 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까지 먹통이 되면, 사탐들은 피해복구를 기다리며 녹초를 부린다고 불평을 해댄다.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지하철이 멈추고, 휴대폰과 기타 전파통신을 증 계하는 장치들이 작동하지 않으며, 공항에서는 관제가 불가능하여 비행 기들이 이착륙하지 못하게 되며, 병원에서는 시각을 다투는 환자에 대한 수술도 증단해야 한다. 이런 현상들은 전력 생산과 공급이 중단되었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의 일부일 뿐이다. 인류의 미래를 열려하는 세계의 원자력 관련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원자력'하면 “방사선 오염'을 떠올리며 반대하거나 기퍼하는 사탐들의 무시 속에서, 스스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꾸준히 연구를 계속하여 그동안 엄청난 양의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왔다. 그에 따라 원자력은 오늘날 전력 생산만 아니라 의료, 산업, 농업, 우주개발 등에 너무나 잘 이용되고 있다. 지구의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며,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은 원자력 이용뿐이다. 알고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원자력 과방 사성 물질의 이용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이룩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원자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에너지 수요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고, 제한된 양의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가 고갈되어감에 따라 이들의 가격은 상승을 계속하고 있 다. 한편 화석연료를 장기간 대량 소비함에 따라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중가 하자, 온실효과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이 닥쳐왔다. 지난 2010년 4월 20일에는 멕시코 만의 수심 1.500미터 해상에 설치한 한 유정(78#)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막대한 양의 원유가 해저로부터 촛구겨 올라 루이지애나 주와 미시시피 주 및 플로리다 주의 바다를 장기간에 결져 오열시켰다. 1989년 3월 알래스카 해안에서 좌초한 원유 운반선 액손 발데즈 호에서는 약 25만 배렬의 원유가 유출되어 알래스카 해변을 오염시켰고, 2007 년 12월에는 우리나라 서해의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충돌 사고로 약 8만 배럴의 원유가 흘러나와 넓은 지역을 크게 오염시켰다. 수 시로 발생하는 이러한 초대형 석유 오염사고는 지구적인 환경 파괴의 재앙이다. 그동안 원자력 에너지는 방사선 오열이라는 위험 때문에 그 이용이 극히 제한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랑을 줄이고, 부족한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충분히 생산하며, 환경 피해를 최소한으로 즐일 유일한 방법은 원자력 에너지뿐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2010년 현 재, 전 세계적으로 436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그동안 기피해온 원자력 에너지 시대를 새롭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21세기 인류의 최대 과제는 에너지, 환경, 그리고 경제 이 3가지의 합리적인 개발과 조화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80%는 화석연료에서 얻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를 가져온 온실가스의 약 85%는 이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온실가스의 약 40.5%는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배출되고 있다. 1933년에 독일의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역사 상 가장 넓은 면적에서 장기간 최대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온 비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종전되기까지 전사자 2.500만 명, 민간인 4,.000만 명의 희생자를 가져온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12월 7일, 동남아시아를 거의 지배하던 일본군은 6대의 항공모함에 353대의 전투기를 싶고 하와이 진주 만을 기습 폭격했다. 이때의 공습으로 미국의 태평양 함대는 거의 괴멸되고 말았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시작된 미. 일 간의 대전은 태평 양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고, 다음 달 5월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은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고 있었다. 미국 역사 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2년간 집권하고 있던 루스벨트는 종전을 거의 앞두고 4월 12일 집무 중에 뇌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사로, 부통령이 된 지 82일 만에 갑작스럽게 대통령직을 인수하게 된 트루먼 대통령은 4월 25일, 그동안 미국 내에서 극비로 진행되어온 맨해튼 계획'에 대해 관계자들로부터 처음 보고를 받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우리는 도시 하나를 단번에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역사상 가장 무서운 무기를 4개월 이내에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던 미국은 1945년 3월, 도쿄와 인근 지역을 8-29 폭격기로 대공습을 감행했다. 이때의 폭격으로 일본은 1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일본은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완강히 저항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각각 투하되자, 드디어 일본은 8월 15일 항복하고 말았다. 원자탄 투하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고, 36년간 일본 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는 광복의 날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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