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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II와 IBM PC의 출시, 그리고 1984년 1월 매킨토시가 등장하기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던 애플과 IBM의 대결은 엉뚱한 승자를 만들었다. IBM PC 호환기종을 뒤에 업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전장을 지배하면서 진정한 승자는 마이크로소프 트로 귀결되었고, 전 세계 컴퓨팅 환경은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호환기종 제조 사 및 강력한 주변기기 회사들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천하의 IBM이었지만, PC 시장에서 초기부터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기존 8비트 시장에 강자들이 많아서 IBM이 파고들어 갈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XT로 명명된 인텔 8088 CPU를 장착한 컴퓨터와 호환기종들이 대규모 마케팅을 무기로 시장에 안착하면서 점점 IBM PC 호환기종들이 컴퓨터 세상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IBM PC 계열이 다른 컴퓨터들을 제치고 독주체제를 갖춘 것은 1984년 출시된 어드밴스 테크놀로지(AT) 컴퓨터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이다. 연초에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초반 판매에 호조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AT가 출시되면서 승부의 추는 기울기 시작했다.

 

AT 컴퓨터는 인텔의 차세대 CPU인 6 MHz 80286을 장착했고 1MB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다. AT 컴퓨터를 지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 3.0 버전을 내놓았는데 이때부터 MS-DOS도 안정성이나 기능성 측면에서 많은 진보를 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5.25인치 1.2MB 플로피 디스켓을 이용할 수 있었고 20MB 하드디스크를 지원했다. 같은 해 업그레이드한 MS-DOS 3.1은 네트워크 환경을 지원했고, 1986년 발 표한 MS-DOS 3.2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GUI를 보고 그대로 흉내 낸 윈도 1.0을 1985년 선보였다. 윈도 1.0은 글자 그대로 초보적인 포인팅 및 클릭만 지원하는 수준으로 매킨토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였다. MS-DOS 3.0 위에서 동작하는 일 종의 응용 소프트웨어 형태였으며, 시장에서는 느리고 무겁고 버그가 많다는 혹 평을 받으며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시작은 198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로젝트 이름을 인터페이스 매니저라고 했다가 1983년 11월 10일 외부에 해당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형태는 정말 매킨토시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는 예상보다 늦게 시장에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에 대한 마이너 업그레이드를 계속 진행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떠보다가 1987년 2.0 버전을 내놓는다. 윈도는 멀티태스킹(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수행하는 윈도의 핵심 기능)을 지원했지만 윈도에서 동작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기존 DOS용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모두 재작성해야 했고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 시장에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과거 MS-DOS 시절 프로그래밍할 때에는 비디오나 그래픽 지원이 빈약했기 때문에, 보통 직접 비디오 메모리에 접근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마우스나 키보드 등 주변기기도 직접 접근했다.

 

그와 관련한 노하우가 중요한 기술이었는데, 윈도에서는 자체적인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이용해서 비디오 카드나 마우스, 키보드 등 주변기기를 제어했기 때문에 더욱 편리한 프로그래밍 환경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느린 성능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1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한 애플 애플은 존 스컬리의 지휘로 매킨토시를 생산하면서 GUI와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삼아 데스크탑 출판 시장을 비롯한 니치 마켓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비해 IBM PC 호환기종 진영에서는 MS-DOS 기반으로 비즈니스 솔루션을 위주로 사업을 풀어갔기 때문에 시장이 별로 겹치지 않았고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면서 발전했다. 한눈에 GUI가 세상을 바꿀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애플에게 GUI 일부분을 라이선스 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애플의 허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MS-DOS 기 반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1.0을 제작해서 출시한 것인데 매킨토시의 GUI와 비교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며 버그도 많고 느렸기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윈도 2.0부터는 윈도를 중첩할 수 있었고 매킨토시 GUI와 유사한 다른 부분들 도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애당초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합의한 라이선스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했다. 애플이 고소한 내용은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룩앤필'을 윈도가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이었다. 애플은 윈도의 모양이나 나타나는 패턴, 사라지는 패턴, 중첩되는 형태와 타이틀 바 등 GUI 요소기술 189가지를 열거했다. c 애플을 고소한 제록스 법원에서는 심리를 거쳐 189개 요소 중 179개의 요소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 도 1.0을 제작할 당시 애플과 합의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나머지 10개는 지 적재산권 보호 범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고소가 진행되는 와중에 세계 최 초로 GUI를 개발했던 제록스는 애플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낸다. 2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애플이 매킨토시와 리사에 적용된 GUI 운영체제를 개발한 것은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 들렀다가 개발하고 있던 GUI를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당시 제록스는 애플에 현물투자를 하고 애플의 주식을 일부 받은 기념으로 애플 엔지니어팀을 초청했던 것인데 이것이 매킨토시 탄생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결국 제록스는 윈도의 탄생을 도왔던 것이다. 제록스의 소송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 넘어서 제기했다는 이유로 기각되고 만다. 이 소송은 그 이면에 있는 세 회사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판례라는 측면에서 도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애플은 전체적인 '룩앤필'에 대한 침해를 인정받고 싶어 했고 이를 그대로 베낀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법원에서는 전체적인 느낌을 지적재산권 침해의 대상으로는 판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신 구체적인 아이템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윈도 모양, 아이콘 이미지나 각각의 메뉴들, 그리고 객체들을 열고 닫는 방식과 같이 세부 적인 요소들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들 대부분은 애플이 원조라는 주장을 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전체적인 느낌'에 대한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1992년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이후 5년 뒤인 1997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GUI 문제에 대해 합의한다. 그와 관련된 내용은 5장에서 자세히 살 펴보자. 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탄생과 윈도 3.1 역대 최고의 킬러 소프트웨어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의견들이 많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워드와 엑셀을 포함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일 것이다. IBM PC가 세상을 장악한 초창기만 하더라도 MS-DOS라는 운영체제만 공급했을 뿐, 워드퍼펙트와 로터스 1-2-3가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이 분야에서도 마이 크로소프트는 윈도를 발표하면서 대세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1989년 처음으로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 3종을 묶어서 비교적 저렴한 스위트로 내놓았다. 이 소프트웨어 제품군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업그레이드한 윈도 3.0(1990), 윈도 3.1(1992)이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단숨에 경쟁 제품들을 제치고 최고의 소프트웨어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윈도의 경우에도 윈도 1.0과 2.0이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윈도 3.1에 이르러서는 가상 메모리와 가상 디바이스 드라이버 기능 향상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면서 MS-DOS가 가지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많이 팔리고 또한 성능 향상을 가져온 윈도 3.1이었지만, 결국 MS-DOS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에 불과했고 MS-DOS 자체 문제 때 문에 더는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는 과감히 MS-DOS를 버리고, 윈도 중심의 운영체제 개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992년 윈도 95에 대한 디자인과 계획을 수립한 뒤 집중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1 최대의 히트작, 윈도 95의 탄생 윈도 3.1을 출시한 직후,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차세대 운영체제로 생각하고 개발을 진행했던 윈도 NT 3.1(코드명 카이로)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기본적으로 워크스테이션급 이상에서 운용할 수 있고 획기적인 개념들이 많이 들어간 운영체제였지만, 1994년까지는 개발을 끝내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1996년 7월이 되어서야 윈도 NT 4.0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도 혁신적인 개념이었던 객체지향 파일 시스템은 제거하고 출시했다. 또한 윈도 3.1을 출시할 당시 IBM에서는 OS/2 2.0을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 트는 32비트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면서 윈도 그 자체가 직접적인 운영체제가 되어서 MS-DOS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고, 비교적 저사양 컴퓨터에서도 작동하는 운영체제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코드명 시카고라는 프로젝트 팀을 발족하고 1993년 말 출시를 목표로 작업에 들어간다. 또한 MS-DOS 7.0을 같이 제공함으로써 하위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비록 원래 예정했던 출시 시기보다는 늦었지만 1995년 윈도 95는 롤링스톤즈의 히트곡인 스타트 미 업으로 대대적인 광고와 캠페인을 벌이며 그 모습을 드러 낸다. 이 음악은 윈도 95의 상징인 '시작' 버튼을 의미했으며 완전히 새로운 운영 체제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에 부응하듯 윈도 95는 세계적 히트상품이 되었다. 윈도 3.1까지만 하더라도 윈도는 MS-DOS의 제약을 받는 반쪽짜리라는 놀림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NEC의 PC에 밀려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윈도 95는 일 본시장에서 NEC의 아성마저 무너뜨리며 명실상부한 운영체제 세계 정복을 달성했다. 뒤를 이어 윈도 95만큼은 아니지만 윈도 98도 히트하면서 전 세계 운영체 제 시장에서 95퍼센트 이상을 장악했다. 운영체제의 힘을 빌려 오피스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 동으로 미래 산업 전체를 독점적으로 끌고 간 탓에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난했지만, 윈도 95 개발과 성공의 이면에는 끊임없는 혁신과 부단한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윈도 95는 어찌 보면 컴퓨터와 관련한 수많은 하드웨어들의 표준을 제시한 셈이었다. 때문에 많은 기기들을 표준적인 방법으로 작동시킬 수 있었고 우수한 개발도구를 활용해서 멋진 소프트웨어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이런 점에서 컴퓨터와 관련해서 우리 인류를 한 단계 전진시킨 커다란 이정표였다는 사 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아이디어는 서로 물고 물리면서 발전하는 모양이다. 파크 연구소에서 시작한 GU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결국 파크 연구소와 제록스뿐이었다. GUI의 진가를 알아본 애플이 상용화를 시작했고, 다시 진가를 알아본 마이크로소프트가 전성기를 열었다. 지적재산권에 대해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텍스트 명령어를 하나씩 입력하며 컴퓨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으로 윈도우 역사에 대한 내용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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