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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PC 호환기종의 독주체제가 계속되면서 호환기종 컴퓨터를 생산하는 회사와 주변기기를 중심으로 한 회사들이 약진한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3개 회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현재도 세계 최대 PC 메이커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으며, IT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일조한 HP와 뛰어난 경영자가 개발한 커스텀 PC 생산시스템을 바탕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회사로 뛰어오른 텔컴퓨터를 소개한다. 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벤처의 원조 HP 공동 창업자인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는 1935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1939년 은사였던 프레데릭 터먼과 함께 데이브 패커드의 집 차고에서 창업했다. 이때 초기 자본금이라고는 538달러에 불과했는데 HP는 1947년 8월 18일 주식회사가 된 이후, 1957년 11월 상장하며 오늘날 IT를 대표하는 회사로 성장했고, 스타트업 벤처 신화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초기 HP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전자부품 및 장비를 만드는 회사였다. 각종 테스터기와 전자계산기가 특히 유명했는데, 초기에 가장 유명했던 제품은 오디오 오실 레이터라는 장비로 이 장비를 월트 디즈니가 구매해서 영화 판타지아)를 상영할 영화관의 음향 시스템을 점검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HP가 실리콘밸리의 상징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이다. 실리콘밸리의 실리콘이 반도체 원료를 상징하듯이, HP는 1960년 반도체 칩을 이용해서 새로운 장비를 만 드는 일을 시작했다. 기존 진공관을 이용하던 장비도 만들고, 더불어 계산기도 개발했다. 또한 1960년대에는 일본의 소니, 요코가와 전기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재미있는 제품들을 몇 가지 만들어내기도 했다. HP가 독자적으로 컴퓨터 산업에 뛰어든 것은 1966년이다. DEC 미니 컴퓨터를 가지고 몇 차례 실험하다가 독자적으로 만든 컴퓨터가 HP 2100, HP 1000 미니컴퓨터 시리즈다. 대형 히트작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20년간 제작했다. 이후 미니컴퓨터와 비즈니스 서버를 중심 상품으로, 컴퓨터 시장에서 꾸준히 제품을 선보이던 HP는 가스 펌프와 은행의 ATM 기기 등에 널리 쓰이는 작은 내장형 터미널 컴퓨터를 판매하기도 했는데, 이 컴퓨터는 비록 내장된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이름을 날릴 수는 없었지만 놀랍게도 세계 최대 컴퓨터 벤더였던 IBM을 판매수량 면에서 추월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최고 컴퓨터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한 HP는 세계 최초로 양산형 PC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HP 9100A다. 1968년에 소개된 이 제품은 컴퓨터는 IBM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PC라는 이름 대신에 데스크탑 계산기로 분류했다. 기술적으로는 CRT 디스플레이, CPU, 보드, 마그네틱 카드 저장장치와 프린터 등을 갖춘 개인용 컴퓨터였고 가격은 5,000 달러 정도로 계산기로 보기에는 많이 비쌌다. 이렇게 앞선 기술력을 가진 HP였기에 애플의 공동창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 회사를 사랑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HP와 일을 하면서 스티브 잡스와 창업했었다. 애플을 만든 후에는 HP에 자신이 만든 PC를 들고 가서 이 컴퓨터를 팔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HP는 자신들은 과학과 비즈니스, 산업 시장에 주력하는 회사라 아직 은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해서 판매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 이때 HP가 스티브 워즈니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IT 형세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HP는 특히 세계 최고의 과학용 계산기 회사로 유명했다. 수많은 모텔이 있었는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고급 기종의 경우 많은 과학자들에게 사랑받았다. HP는 마치 과학자와 공 학자의 친구와도 같은 회사였고 임직원들도 그런 평가를 즐거워했다. 1984년, HP는 데스크탑용 잉크젯 및 레이저 프린터를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 당시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던 시기로, 무수한 IBM PC 호환기 종들이 나오고 있었다. 또한 HP는 스캐너 기술도 개발해서 최초로 상용화했고, 팩스와 복사기 기능이 통합된 복합기 개념을 도입한 제품도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현재도 HP는 이 와 같이 컴퓨터의 친구인 주변기기 부문에서 세계 최고로 군림하고 있다. 과거 계산기와 공학용 테스터 제작으로 시작한 HP가 이제는 세계 최대 PC 메이커의 자리까지 올랐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HP는 1989년 아폴로 컴 퓨터, 1995년 콘벡스 컴퓨터를 합병한다. 1999년에는 HP의 컴퓨터 관련 기기와 저장장치, 영상장치 등 사업부문을 제외한 모든 사업부문을 떼어내서 애질런트라는 회사로 분사시키는데, 이 분사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 대 규모의 분사였다. 애질런트 역시 3만 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거대한 회사로 과학기기와 반도체, 광학 네트워크 장비와 테스트 장비, 무선사업과 관련한 R&D 제조능력을 갖춘 회사 다. 1999년 7월 HP는 칼리 피오리나를 CEO로 선임했다. 케일 피오리나는 2002년 당시 최대의 PC 제조업체 중 하나였던 컴팩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실적이 악화되고 많은 종업원이 해고되면서 2005년 HP에서 퇴출되는 불운한 운명에 처했다. 이러한 부침에도 불구하고 HP는 2009년 텔을 밀어내고 세계 최대 PC 메이커 자리에 올라섰다. HP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컴퓨터 관련 주변기기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를 지키고 있다. 비록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IT 세상을 만들어낸 커다란 거인 중 하나다.

 

사업가의 피를 타고난 사나이 마이크 델 HP와 함께 전 세계 PC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델컴퓨터는 비록 이제는 HP에게 세계 최대 PC 메이커 자리도 내놓았고, 2위 자리마저 대만 회사들에게 빼앗기는 형국이지만 한동 안 부동의 하드웨어 제조회사로 자리를 굳건히 하던 신화적인 회사다. 이 회사를 창업한 마이클 텔은 1965년 생으로 텍사스 휴스턴 출신인데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증권 중개인인 어머니 그리고 전형적인 유태인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텔은 도전 정신이 있었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사업가 기질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는데, 열두 살 때에는 우표 사업으로 2천 달러나 벌어들였다. 우리나 라도 그랬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우표수집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우표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과 우표 거래를 할 때 중개인들의 수수료가 비싸다는 점에 착안해 우표 판매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우표를 구입하고 넉살 좋게 이웃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우표를 팔 때 중개인에게 넘기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일 단 판매할 우표를 확보한 뒤에는 제품 카탈로그와 우표수집가들이 흔히 보는 잡지에 광고를 게재했는데, 단순한 광고를 하지 않고 우표마다 가격 변동을 체크해 가격이 오르는 시즌에 맞추어 광고할 주력 우표를 선정하는 치밀함을 보여주면서 어린 나이에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열여섯 살 여름방학에는 텍사스 지역신문에서 구독자 모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신문구독을 권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사람들의 신문구독 패턴을 연구해서 집중적인 영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사하는 사람들이 새로 신문을 구독하거나 교체한다는 점에 착안해 휴스턴의 16개 법원에서 최근 결혼 신고를 한 사람들이 기록된 명단을 입수해 이들을 중심으로 집중 마케팅을 했는데, 결혼을 하면 보통 새 집으로 이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집을 구입할 때 은행융자를 받을 것이라는 것도 감안해, 은행에서 융자받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이들에게도 집중 영업을 하면서 2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 인다. 오늘날이라면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에 생각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30년 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업가 기질로 충만한 영리한 소년이 어느 날 애플과 사랑에 빠진다. 그가 자주 드나들던 전자제품이나 키트 판매점인 라디오섀크(오늘날까지도 전재한 전통의 전기, 전자관련 매장)에 전시된 애플에 대한 동경으로 몸살을 앓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를 졸라서 결국에는 열다섯 살 생일선물로 애플 II를 받았다. 필자 역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인근 백화점 최고층에 전시된 한 대의 애플 컴퓨터를 만지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다. 베이식 언어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연필로 수없이 코딩을 하고, 이를 타이핑해서 집어넣고 실행하기를 거듭하면서 게임을 완성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몇 년을 매일같이 하는 것을 보던 부모님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생일에 애플 II를 사주셨고 그다음부터 마음껏 컴퓨터를 만질 수 있었다. 애플 II를 가지고 컴퓨터 잡지를 탐독하면서 분해와 조립 그리고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마이클 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선택한 길은 뜻 밖에도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치과의사인 아버지의 뜻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83년 그는 텍사스 대학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컴퓨터만큼 외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할 수 없었다. 대학에 와서도 컴퓨터를 조립하는 것에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부 품을 모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조립해주고 대기업 제품보다 월등히 싼 가격에 더 나은 하드웨어를 만들어주어서 텍사스 대화의 '세운상가' 조립상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부모는 이런 외도가 못마땅했다. 기숙사를 찾아가서 호된 꾸지람을 하고 그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도 했지만, 결국 델은 컴퓨터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온다.

 

텔은 컴퓨터를 조립해서 팔면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 원가는 가격 중 20~30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매장 주인의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그는 컴퓨터 업계와 대리점이 늘 느끼고 있던 재고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기존 제품은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재고 소진을 감안해 제품을 출시하게 되고 이는 결국 소 비자들의 선택과 이익을 제한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유통의 함정'을 파악하고는 직접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1984년 5월 단돈 천 달러로 텍사스 주에서 델컴퓨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컴퓨터 대리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공급초과로 팔리지 않는 구형 컴퓨터를 싼 값에 모두 구입한 뒤에 부품을 회수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조합으로 다시 재조립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1984년 설립 첫 해 델컴퓨터는 18만 달러라는 미미한 매출을 올렸지만 1985년에는 3천만 달러, 1986년에는 6천만 달러 매출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86년 컴덱스에서 '세계 최고 성능의 IBM 호환기종'이라는 2장짜리 광고가 화제로 오르면서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로 급성장했는데, 당시 출시된 IBM PC 호환기종 중에서 가장 빠른 286 12 MHz CPU를 채택하고(당시 IBM286 PC는 대부분 6 MHz) 가격은 절반이라는 콘셉트가 주목받으며 최고 PC 잡지였던 〈PC WEEK) 표지까지 장식한다. 또한 델을 공격하던 A/S 문제에 대해서는 24시간 수신자부담 전화서비스와 3년 무상 서비스 등의 공격적인 정책을 채택했다. 이런 정책은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제품을 국내외에 선보이면서 초창기 시장 진입 수단으로 이용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지만, 당시의 컴퓨터 업계에서는 획기적이고 공격적인 정책이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많은 수의 컴퓨터를 조립하고는 했다. 당시에는 대기업 제품이 비쌌기 때문에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에서 조립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부품을 사다가 집에서 조립하는 사람도 많았다.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부탁받고 조립해주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꽤나 잘 나가던 용산 조립상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마이를 델은 조립상의 롤 모델이라고 할 만했다. 처음에는 용산 조립상과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시작했지만 전화와 인터넷 사업모델로 삼고 도요타 자동차가 만든 효과적인 관리 및 공급 체인 관리(SCM)를 도입해 극도의 효율성을 끌어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하드웨어를 제공하면서 델컴퓨터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델은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주로 생산방식과 관련한 기술을 많이 개발했다. 최신 IT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해서 소비자들에게 최고 제품을 값싸게 제공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고객들의 생활과 소비패턴을 분석해 판매와 영업 그리고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고객관계 관리(CRM)와 제품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서 자재와 부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 고 재고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SCM 등 시스템을 업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그밖에 회사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업 자원 관리계획(ERP) 역시 선도적으로 개발 및 적용해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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