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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넥스트의 시작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애플이 매킨토시를 판매하기 시작했던 1984년 초기, 매킨토시는 대학교를 중심으로 판매가 상당히 순조로웠다. 같은 해 실리콘밸리에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미테랑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점심 연회가 열렸는데 스티브 잡스는 저명한 대학 교수들에게 컴퓨터 개발과 관련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으러 다녔다. 그중에서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던 폴 버그는 스티브 잡스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복잡한 화학구조나 DNA 등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고사양 컴퓨터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3M' 콘셉트를 구현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지금으로서는 우습지만 그가 말한 3M이란 1MB가 넘는 RAM과 메가픽셀(백만 화소) 디스플레이 그리고 1메가 플롭(CPU의 속도 단위)이 넘는 수행성능을 가진 컴퓨터였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폴 버그의 조언을 실행할 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넥스트 컴퓨터를 창업했다. 후일 실제 개발된 넥스트 컴퓨터는 당시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에서 일하던 팀 버너스 리가 HTML 언어를 개발하고 첫 번째 웹 서버로 이용했는데, 이런 면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현재의 웹 환경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를 설립한다고 하자 몇 명의 동료들이 애플을 떠나서 동참했고 스티브 잡스를 좋아했던 폴 버그와 여러 대학교수들이 스티브 잡스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다 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워크스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의 사양은 정했지만 가격은 대학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춰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애플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회사를 운영한다며 고소했다. 당시 애플은 4,300명이 넘는 종업원이 있었고 회사의 가치도 2조 원을 상회하고 있었기에 단 6명이 일하고 있던 넥스트에 대한 고소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넥스트는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백만장자 로스 페로를 첫 번째 외부 투자자로 맞아들인다. 1987년 그는 2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하고 넥스트의 주식 16퍼센트를 획득했다. 아직 아무것도 없었던 넥스트의 가치를 무려 1억 2,500만 달러로 계산한 것이다. 으 넥스트 워크스테이션 출시 컴퓨터 과학도에게 성지로 불리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마하 커널을 개발한 엔지니어인 에이비 티베니언이 워크스테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 넥스트에 합류했다. 그가 합류하면서 넥스트 워크스테이션 개발은 급물살을 탔다. 티베니언은 이후 현재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그리고 리사 제작됨을 이끌었던 리치페이지가 하드웨어 개발 책임을 맡았다. 리치 페이지는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를 설립할 때 애플에서 동행한 사람이다. 넥스트 컴퓨터는 1988년 드디어 그 모습을 실제로 드러낸다. 그런데 그 외양이 정말 파격적이었다. 대부분 넓적한 직육면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컴퓨터와는 완전히 구 별되는 30cm x 30cm x 30cm의 완전한 정육면체였고 마그네슘으로 케이스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 컴퓨터는 정식 명칭인 넥스트 컴퓨터라는 이름보다는 큐브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 1989년 테스트를 거쳐 적은 수의 큐브를 베타 버전이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를 올려서 대학에 판매했는데 가장 저렴한 기본형을 6,500달러로 책정했다. 비록 많은 수를 제작하지 는 않았지만 넥스트는 수많은 컴퓨터 잡지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모토롤라 25 MHz68030 CPU와 8~64MB의 RAM, 256MB MO 드라이브, 330/660MB 하드디스크와 10 Base 2 이더넷 네트워크, 다중 처리기에 대응한 32비트 표준 버스 그리고 1120 × 832 해상도를 지원하는 17인치 메가픽셀 그레이 스케일 디스플레이까지 당시로서는 최고 사양을 자랑한 컴퓨터였다. 같은 시기 IBM 호환 PC는 보통 640KB~4MB RAM과 386 CPU, 10~20MB 하드디스크를 탑재하고 있었다.

 

1989년 일본 캐논은 넥스트에 1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지분 16.67퍼센트를 획득했다. 이는 회사 가치가 이제 6억 달러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캐논은 컴퓨터 자체보다 넥스트스텝 운영체제의 가능성을 높이 산 것이다. 넥스트를 실제 일반에게 판매한 것은 1990년이었다. 가격 역시 9,999달러로 일반인들은 구매하기 어려운 '꿈의 컴퓨터'였다. 이와 함께 1990년 넥스트는 두 번째 워크스테이션 시리즈인 넥스트 큐브와 넥스트스테이션을 내놓았다. 이 워크스테이션은 업계 최초로 CD-ROM 드라이브를 채용했는데 이것은 결국 컴퓨터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넥스트의 하드웨어 사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과감히 하드웨어 사업 부분을 정리하고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었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넥스트 워크스테이션이 업계에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기념비적인 기술들이 넥스트 플랫품을 이용해서 세상에 나타났다. 팀 버너스 리는 1991년 넥스트 컴퓨터를 이용해서 최초의 웹브라우저와 웹 서버를 만들었다. 또한 전설적인 3D 게임 개발자 존 카맥은 넥스트 컴퓨터로 파격적인 게임 두 개를 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울펜스타인 3D와 둠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과학기술계산 패키지로 많은 명성을 쌓고 있는 매스매티카도 처음에는 넥스트 플랫품으로 개발했다. 넥스트는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를 다양한 컴퓨터 하드웨어에 포팅하면서 오픈스텝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켰다. 하드웨어 사업을 정리하면서 많은 수의 인원을 해고하고 공장을 매각하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 넥스트 기술이 애플 재탄생을 주도했다. 넥스트스텝은 이후 현재 애플 운영체제인 맥 OS X으로 재탄생했으며, 오브젝티브 C라는 언어를 이용하는 개발자 도구는 오늘날 애플 개발자들이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코코아로 재탄생했다. 또한 세계 최초의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라고 할 수 있었던 웹 오브젝트 역시 맥 OS X 서버와 XCode로 대를 이었다. 넥스트스텝은 CPU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CPU에 포팅할 수 있었는데, 이런 특징이 결국 오늘의 애플을 있게 한 혁신적인 요인이었다. 전통적으로 애플이 이용하던 모토롤라 CPU 그리고 후에 다루게 될 파워PC CPU뿐만 아니라 라이벌이었던 인텔 x86 아키텍처를 모두 지원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 애플이 인텔 CPU를 이용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으며, 오늘날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아이폰 운영체제인 ARM 버전의 간략한 OS X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를 통해 시대를 앞선 내공을 쌓은 덕에 오늘과 같은 애플의 전성기를 다시 끌어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넥스트를 운영하면서 독특한 경영방식을 실험했던 것들이 애플을 다시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던 시절의 그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해서 갑자기 무슨 신통방통한 도깨비방망이를 얻어서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혁신을 이룬 것이 아니다. 비록 그 자체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1985년부터 미래를 내다본 꾸준한 투자와 끊임없는 혁신을 했던 넥스트를 이끌지 않았었다면 그리고 그 전통 이 애플에 계승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애플의 재탄생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재기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회사인 픽사의 역사는 현재 세계 최고 애니메이터이자 픽사의 스토리텔링을 책임지고 있는 존 래스터가 디즈니를 떠나서 조지 루카스가 운영하던 특수효과 컴퓨터 그룹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특수효과 그룹은 조지 루카스가 가지고 있었던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드 매직(ILM)과는 별도 조직이었지만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다. ILM이 영화 제작 자체와 특수효과 전반에 치중했다면 이 그룹은 3차원 컴퓨터 그래픽에 좀 더 집중했다. ILM은 짐 클라크가 설립한 실리콘 그래픽스가 만든 장비를 대거 이용해서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가 어우러진 기념비적인 작품 <쥬라기 공원> 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실리콘 그래픽스는 성공을 맛보게 된다. 실리콘 그래픽스 사(SGI)의 창업자 짐 클라크는 이후 마크 앤드리센을 만나서 실리콘 그래픽스로 번 돈을 넷스케이프에 투자하고 많은 지분을 획득했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인터넷 붐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렇게 보면 조지 루카스는 여러 단계를 거쳐서 구글의 인터넷 영지와 애플의 하드웨어 영지까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도 할 수 있다.

 

조지 루카스는 최고의 제작자였지만 1986년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겪게 되는데 당시 3D 컴퓨터 그래픽을 담당하는 존 레스터 그룹을 매각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판단을 했고 넥 스트를 설립한 스티브 잡스에게 이 그룹을 천만 달러에 매각했다(이와 관련해서 당시 조지 루카스가 이혼 위자료를 지불해야 했던 사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 그룹을 독립회사로 만들면서 회사 이름을 '픽사'로 정했다. 당시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바라보던 픽사는 몇 배 가치가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협상 능력과 언변으로 조지 루카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1979년부터 루카스 필름에 있던 에드 캣멀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픽사의 공동창업자이자 CTO로 취임한다. 에드 캣멀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핵심 기술 일부를 직접 창조한 사람이 고 컴퓨터 그래픽(CGI) 선구자로 컴퓨터 그래픽과 관련한 기술 대부분을 책임진 세계적인 인물이다. (이 재편된 할리우드의 제작방식 보통 할리우드에서는 프로젝트 단위로 영화를 제작한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 제작 시스템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제작사에서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람들을 해당 프로젝트에 맞게 프리랜서로 고용하는 것이다.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가 모두 해당 영화에 한해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한다. 영화 제작이 끝나고 계약이 만료되면 다들 다른 영화 프로젝트를 찾아 떠 난다. 이런 방식은 오랜 세월 동안 고착화된 시스템으로 함께 일하기 좋은 팀워크가 갖춰질 때가 되면 제작이 끝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할리우드 시스템은 다양한 중상모략과 배신이 판치는 세계이다. 처음 제작 아이디어가 나오면 정보를 빼돌리기 위한 공작과 정치적인 싸움으로 많은 시간이 낭비된 다. 어떤 경우에는 제작하기도 전에 프로젝트가 좌초하는 경우도 많고 제작을 시작해도 완성도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픽사는 이러한 할리우드의 제작관행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감독과 작가, 스태프에 이르는 모든 제작팀이 한 회사 소속으로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픽사가 제작하는 영화는 작가와 애니메이터 그리고 감독이 같은 회사 직원으로서 협력하면서 제작하는 것이다. 제작비는 할리우드의 제작사가 픽사로 돈을 지급하고 픽사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원들에게 월급도 충분히 주고 동시에 이들의 실력을 쌓기 위한 교육 및 경력개발에 투자한다. 이를 통해 픽사에 있는 직원들은 계속해서 역량이 커지는 것이다.

 

픽사 대학 건물에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Alienus Non Diutius'. 이 말의 의미는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으로 협업과 개개인의 능력 함양을 중 시하는 픽사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06년 74억 달러에 픽사를 디즈니에 매각한다. 루카스 필름에서 사들인 가격이 천만 달러였으니, 20년 만에 740배로 가치를 키운 셈이다. 디즈니에 매각된 뒤에도 픽사라는 기업 문화는 고스란히 보호받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 바라보면 브랜드는 디즈니를 유지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최대주주가 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픽사가 디즈니를 산 것이나 마찬가지다. 픽사를 이끄는 양대 산맥인 존 태스터와 에드 캣멀은 여전히 픽사를 지휘할 뿐 아니라 거대기업 디즈니를 혁신하는 커다란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픽사의 기업문화는 스티브 잡스에게도 역량과 가치관 그리고 회사 운영방식 동에 큰 영향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아도 IT 산업계 인물 중에서는 대단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통해 예술적 감수성과 창조성에 대한 감각을 더욱 키웠을 것이며 과거에는 부족했던 조직 간의 협업 문화와 신뢰 그리고 창조적 기업 경영과 관련한 많은 수련과정을 통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능력을 키우고 애플로 돌아온 것이다. 3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보았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하드웨어 제작사, 하드웨어 유통사까지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떠오른 생각은 회사가 비전과 목표를 정확히 갖지 않으면 아무리 세력이 커지더라도 변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전과 기술이 없이는 쉽게 침범받으며 중앙으로 진출하기 어렵다. 올바른 비전을 가지고 회사에 색을 입히는 과정만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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