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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웹로그를 달리 부른 것으로, 개인에 최적화된 홈페이지로 댓글관리와 일정 그리고 트랙백과 같이 블로그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과 구독 등 기술이 들 어간,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시작을 알린 기술이다. 웹로그라는 말은 존 바거가 1997년 12월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짧게 말한 블로그라는 말은 피터 머훌즈가 1999년 자신의 블로그에 이용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이 용어를 널리 퍼지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트위터의 창업자이기도 한 에반 윌리암스이다. 에반 윌리암스는 1999년 블로그 같은 개인 홈페이지를 잘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품 서비스를 개발하려고 파이라랩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플랫품인 블로거닷컴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서비스는 가장 대표적인 블로그 서비스로 급부상한다. 이 타고난 창업자의 피 에반 윌리암스는 타고난 창업자다. 1972년 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와 텍사스, 네브라스카 등지에서 다양한 기술직과 스타트업 회사에 몸을 담았던 그는 1996년 캘리포니아로 입성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시작한 곳은, '웹 2.0'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기술 관련 컨퍼런스와 출판을 선도한 오레일리 미디어였다. 오레일리에서 처음에는 마케팅을 담당했지만 오래지 않아 독립 계약자로서 코딩도 하고, 동시에 프리랜서로 인텔이나 HP와 같은 유수의 회사에서 일을 맡아서 수행했다. 그는 멕 휴리한과 함께 파이라랩스를 설립했다. 처음 파이라랩스를 설립할 때 두 창업자가 생각했던 사업은 웹에서 동작하는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기업에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이 서비스 이름이 파이라였는데, 솔루션을 개발하다 보니 개인 노트 관리 기능을 개인 미디어 서비스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 프로젝트에서 떼어내서 블로거 닷컴이라는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냈다. 블로거닷컴은 세계 최초로 블로그 작성과 발행 및 관리를 가능하게 한 웹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에반 윌리암스에 따르면 그가 블로거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당 시 조금씩 블로그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기에 엉겁결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블로거닷컴은 1999년 8월 일반에 공개했는데 초기에는 완전한 무료 서비스로 수익모델이 전혀 없었다. 그 덕분에 자금은 바닥나고 직원들의 급여는 계속 밀 리기 시작했다. 결국 공동창업자인 덱 휴리한을 포함해 모든 직원들이 살 길을 찾아서 회사를 떠났고 블로거닷컴은 에반 윌리엄스가 혼자서 운영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에반 윌리엄스에게 투자를 한 곳이 트렐리스라는 곳으로, 창업자인 댄 브리쿨린은 블로거닷컴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그리고 광고모델이 가능한 블로그스팟과 좀 더 다양한 기능과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블로거 프로 등을 만들면서 수익창출을 하기 시작했다. 2003년, 구글은 파이라랩스를 합병하고 블로거닷컴을 만들어낸 에반 윌리암스와 직원들을 고용했다. 블로거닷컴은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에반 윌리엄스 그리 고 주 개발자였던 덱 휴리한과 폴 바우시는 블로그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유튜브는 급속히 성장했다. 2006년 7월에 유튜브가 공식 발표한 것에 따르면 하루에 65,000개의 신규 비디오가 업로드되고 있으며, 하루에 비디오를 보는 횟수는 1억 건을 돌파했다. 구글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유튜브를 2006년 10월 16억 5천만 달러라는 정말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사들였다. 이 사건은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를 인수 합병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파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미디어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인터넷을 통해 광고시장을 빼앗아가고 있는 구글 이 이제는 영상 부분까지 뛰어든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당시까지 유튜브를 지배하던 영상들은 대부분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라고 불리던 짧은 영상들이었다. 애완동물을 찍거나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 가벼운 영 상들이 많았는데, 날이 갈수록 스포츠 영상이나 뮤직 비디오와 같이 기존 미디어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영상들이 올라오면서 미디어 업체의 심기를 슬슬 건드리기 시작했다.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이 유튜브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단순히 젊은 시절에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들은 여전히 창의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구글 역시 이들을 신뢰해 유튜브 운영을 이들에게 일임했다. 최근에 살라르 카만가르가 유튜브의 운영 권한을 채드 헐리에게 넘겨받았지만, 이는 유튜브 가 이제 디스플레이 광고 동으로 제 몫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립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오늘날 유튜브를 구글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성장시켰다.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들은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하루에 업로드 100만 전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지 않아 1억 건이라는 엄청난 업로드 수치로 나타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서비스 확장을 위해서는 자본이나 기술 양쪽에서 자신들만의 역량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했고, 구 글이 가진 막강한 서버 운영기술과 자본의 힘을 빌려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특히 창업자들은 구글이 사용자 중심 철학과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유튜브를 사들 이려고 한다는 것과 자신들을 믿고 지원해준다는 말에 구글의 팬이 되면서 구글을 위해 일을 시작했다. 유튜브는 엄청난 방문자 수와 UGC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익은 내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웠지만, 미디어 업계에서는 유튜브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구글을 비웃었다. 이에 화답하듯이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스티브 발머는 유튜브가 저작권 함정에 걸려서 결국에는 냅스터처럼 문을 닫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유튜브와 구글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가 돌아가는 민주적인 플랫품이 결국에는 창의적인 콘텐츠를 살릴 것이며, 방송국의 힘에 밀리지 않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도록 도와주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저작권자인 미디어 업체와의 협상은 주로 에릭 슈미트가 담당했는 데, 미디어 업체들이 과거 방식처럼 선불을 포함한 과도한 요구를 하자 미디어 업체에게 막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기보다는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길을 선택한 다. 이런 길을 가면서 전향적으로 나오는 미디어 업체와는 협력을 하고, 그렇지 않은 업체와는 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결국 비아콤은 유튜브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비아콤은 유튜브가 자사 콘텐츠를 사용자들이 무단으로 올리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명목으로 10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유튜브는 저작권 침해 여지가 있는 콘텐츠는 최대한 걸러내고 있지만, 모두를 걸러낼 수 없었고, 기본 적으로는 누군가 저작권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면 관련 콘텐츠를 조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유튜브는 법정소송 다툼에서 디지털시대 콘텐츠 법(DMCA)의 '안전한 항구' 라는 개념을 인용해 유튜브와 같은 플랫품 제공 및 발행자는 콘텐츠를 삭제해달라 는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성실하게 제거해주기만 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쳤다. 이 법정소송은 불리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공개하거나, 비아콤이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위장 아이디로 콘텐츠를 업로드한다는 폭로 등이 이어지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1차 소송에서는 인터넷 비디오 스트리밍 콘텐츠 역시 DMCA 원칙을 적용할수 있다는 판결을 함으로써 유튜브가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과학과 비즈니스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라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자신이 만들어낸 것은 정말로 극히 소수를 빼고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남이 해놓은, 그리고 역사가 이룩해 놓은 데이터와 자료, 경험에 접근해서 이를 바탕으로 진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과학이고 창작이다. 이를 철저하게 가로 막고 특허와 저작권이라는 이름의 압력, 기술계약 또는 기술이전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정치적 경제적 부담, 변호사와 변리사만 좋아할 복잡한 사용허가 범 위와 클레임 등은 공유 정신을 철저히 가로막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협업이 개방적으로 가능하려면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로열티나 심각한 사용허가 조전 때문에 연구나 2차 창작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 콘텐츠나 경험 동을 사용할 수 없다면, 결국 여기에서 파생될 더욱 큰 이익이 사라지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기업 내부 결정에 의해 이런 커다란 물줄기를 돌릴 수도 있다. 저작권을 가지고도 공유와 협업의 원리를 이해하고 유튜브와 손을 잡고 VEVO 서비스를 시작한 유니버설, 소니, EMI의 약진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많은 사람들이 레이디 가가나 샤키라, 저스틴 비버의 뮤직 비디오를 아무런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음원과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거나 광고수익 등 부가수익이 발생하는 상 황은, 유튜브와의 소송으로 역주행을 해버린 비아콤과 더욱 차별되어 보인다. 바야흐로 공유의 시대가 왔다. 공유에 대한 주장은 인터넷 초창기부터 계속되어 왔으나 진정한 공유의 시대는 이제야 찾아온 것이다. API를 공유하거나, 심지 어 생각을 공유해서 수익을 확보하는 회사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콘텐츠 공유 부분에 있어서는 넘어가야 할 산이 많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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